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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공부] 프리드리히 니체_1 본문
1. 생애와 주요 저작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1844년 뤼첸 근교의 뢰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여자만 있는 가족들과 자랐다. 니체는 예민하고, 허약한 아이였지만 엄격한 자기 훈련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려 하였다. 학창 시절 그리스 고전에 빠졌고 라이프치히대학서 고전문헌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또한 음악을 사랑했으며 특히 바그너의 작품을 좋아하였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의 깊은 영향을 받은 바그너를 좋아했던 그는 서점에서 쇼펜하우어의 주저를 읽고 그에게도 사로잡히게 된다.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니체는 논저를 발표하며 24세에 스위스 바젤대학의 고전문헌학 촉탁 교수로 초빙되었다. 하지만 바젤에서 행복한 생활은 1870년 발발한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니체는 심한 이질에 걸려 그 이후 건강을 되찾지 못하였다.
1871년 니체는 '음악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의 탄생'이라는 저작을 발표했다. 그는 그리스인의 생활과 예술창조에서 두 가지 대극적 요소가 작용한다고 보았으며, 이를 디오니소스적 요소와 아폴론적 요소라 불렀다. 디오니소스적 요소는 몰아적인 도취에 비유할 수 있으며, 음악으로 직접적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으며, 반면에 아폴론적 요소는 균제와 조화의 힘을 가리킨다.
1970년 독일의 대외적 권력이 팽창하자 니체는 이를 비판하는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비판은 '반시대적 고찰'에서 전개되었다. 첫 번째 고찰은 교양속물인 슈트라우스에 대한 비판이었고, 두 번째 고찰은 역사적 지식 소재가 만연되어 실제 생활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세태를 비난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고찰은 쇼펜하우어와 바그너를 숭고한 문화의 교사로 찬양하고 있다. 하지만 니체는 생을 부정하고 기독교의 이상을 받아들이는 바그너를 보고 절교를 선언하였다.
바그너와 절교 이후 니체는 제1기를 벗어나 제2기로 접어든다. 그는 학문에서 구원을 모색했으며 자연주의적 실증주의로 접근하였다. 이러한 점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자유로운 정신을 위한 책'에 서술되어 있다. 이 시기 그는 건강상의 중대한 위기를 겪었고, 바젤 시는 그가 사망할 때까지 연금을 지급했다.
자라투스트라에 관한 저작에서 니체는 발전하는 인간이 거치는 세 가지 단계를 서술한다. 첫 번째는 권위와 스승에 의존하는 단계, 두 번째는 이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는 단계, 마지막은 독자적인 가치와 궁극적 목표에 헌신하는 단계이다. 특히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더불어 시작된다. 스위스를 떠난 후로 니체는 다양한 국가를 돌아다녔고, 82~83년 겨울 동안 이탈리아에 머물던 어느 날 그는 머릿속으로 자라투스트라의 형상이 떠올랐다.
자라투스트라는 니체 철학 사상의 시적 형상화라 볼 수 있다. 그는 이 저작을 집필하던 중 자신의 사상을 체계적인 방식으로 서술하여 4권으로 출간해 볼 계획을 품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이 저작을 완성시키지 못했다. 1886년 '선악의 저편. 미래의 철학을 위한 서곡'은 원래 니체가 계획한 체계적 대작의 도입부로 구상된 것이었다. 그러나 기존 저작의 발행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그러는 동안 니체의 삶은 더욱 고독해져 갔다. 친구들도 그의 사상에 멀어져 갔으며, 저작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자라투스트라의 종장 원고부터는 출판업자도 찾을 수 없었고, 자비로 모든 것을 출간해야 하는 지경에 이루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니체의 자부심은 점점 더 높아져 갔고, 언어는 갈수록 외침에 가까워졌다. 1888년은 그의 창작활동에서 정점을 이루는 해였고, 이 시기에 바그너와 더 이상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때 덴마크의 학자 브란데스(Brandes)가 처음으로 니체 철학에 대한 강의를 개설하며 니체의 사상적 영향력이 시작되었다. 니체는 브란데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 책에서 나는 세계사적 파문을 일으킬 냉소적 자세로 나 자신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 책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에 대한 가차 없는 암살 행위입니다. 이 책의 끝에서는 모든 기독죠적인 것에 천둥벼락이 쏟아집니다. 당신께 단언하거니와 2년 후면 전 세계가 경련을 일으킬 것입니다. 내가 바로 화근입니다"
그는 너무 늦게 인정받았고, 그의 질병은 더욱 악화되었다. 모든 가치를 전도시키려는 그의 고독한 작업은 그의 체력과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1889년 니체는 갑자기 마비 증세를 일으켰다. 간신히 의식을 되찾았지만 결국 가족의 보살핌 속에서 12년간 간병을 받다가 1900년 이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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